글의 뇌관을 터뜨리는 3가지 에너지
힘이 넘치는 글을 쓰려면, 글에 어떻게 접근하면 좋을까요?

'생각'부터 해야 할까요?
그렇다면, 어떤 생각을 떠올려야 할까요?

'생각'은 무엇일까요?

자신의 의지로 글에 힘을 심을 수 있는 '정신의 에너지'일까요?
아니면, 언어로 만들어 놓은 '의식의 감옥'에 불과한 것일까요?
아니, 꿈보다 깊고 뜨거운 '무의식의 늪같은 용광로'는 아닐까요?

펜을 들기 전에 먼저 글에 대한 꿈부터 꾸어 봅니다.
꿈을 생각하면, 프로이드나 융이 떠 오릅니다.
길어질 듯 하니, 같은 계열의 라캉으로 건너뛰어 봅니다.

언어 정신분석 철학자 라캉은 우리 정신세계를 3가지로 나누었습니다.
첫째는 ‘상상계’, 둘째는 ‘상징계’, 셋째는 ‘실재계’입니다.

라캉은 처음부터 '언어'를 화두로 잡았습니다. 언어가 드러나지 않는 유아기의 무질서한 정신세계, '상상계'가 인간의 인식을 지배한다고 보았습니다. 하지만 아기가 자라면서 언어를 배우고 내뱉는 단계가 되면, 인간의 정신은 생각을 언어의 그물로 걸러내는 ‘상징계‘의 의식세계로 진입한다고 말합니다.

이때 ‘상징’의 키워드인 '언어'는 아버지의 권력이자 질서가 된다는 것입니다. 암묵적 사회계약까지 모두 포괄해서지요. 그래서 글을 쓴다는 것에 대해 법과 질서를 세우고 가부장적 권력을 행사하는 행위와 동일시하고 있습니다.

언어에 길들여지는 인간의 정신은 ‘상징계’에 들어 정치적 사회적 지배 이데올로기에 순응하기 시작합니다. 상징은 언어로 발전해, 법과 윤리, 질서를 만듭니다. 그래서 사회와 인간의 정신을 강력하게 지배하게 된다는 것이지요.

하지만 라캉은 상징이나 언어가 세상과 인간의 정신을 완전히 지배할 수는 없다고 보았습니다. ‘실재계’의 존재 때문입니다.

‘실재계’의 정신세계는 ‘상징계’의 언어라는 그물코에 걸려들지 않습니다. 언어의 그물망 사이로 더 많이 빠져 나가는 장중한 무의식의 영역이 수없이 드러난다고 설명합니다. 언어의 질서나 문법망에 걸려들지 않는 ‘실재계’는 지극히 위험합니다. 그야말로 가공할 무의식의 폭발적 에너지가 '실재계'를 지배한다는 것이지요.

저도 정신의 에너지와 힘에 눈길을 두고 있습니다.
'실재계'의 뇌관은 글로 씌여진 책보다는 영상으로 편집된 영화에서 더 잘 터지는 듯 합니다.

글쓰기에서도 폭발적 에너지가 터진다면, 그 에너지가 어디에서부터 불거져 나올까요?
생각일까요, 의식일까요, 무의식일까요..?

글쓰기에 앞서 환기한 라캉 이야기는 잠시 접고 추후에 다시 논하기로 하지요.
이제 힘있는 글쓰기에 접근하기 위해 에너지의 구성요소 3가지를 함께 짚어보도록 하시지요.

글쓰기를 구축하는 구상(構想)과 구성(構成), 표현(表現), 이 세가지를 축으로 하나씩 써 보시지요.


첫째 構想(구상)입니다.

라캉식으로 말하면 ‘구상’은 ‘상상계’를 지칭할 수 있습니다. 무한 상상이지요, 언어, 체계나 질서에 구애받지 않는 인간의 정신작용이 무한 확장되는 상상의 알고리즘 영역입니다. ‘구상’은 글의 영역이라기보다는 그림이나 영상의 카테고리에 가깝겠지요.

깨끗하고 텅빈 가슴속에 스케치 하듯 구상해 봅니다. 수채화나 유화를 그리기 전, 하얀 백지 캔버스에 밑그림을 그리듯이요. 가슴속 그림은 넘쳐 흐르는 그리움이 만들어냅니다.

나무보다는 숲이 먼저 그려지겠지요. 숲을 그리면 나무가 슬며시 들어섭니다. 또 수풀 사이로 강이 흐르면 글의 방향과 주제, 플롯과 컨셉이 자연스럽게 잡힙니다. 그런 다음엔 주제를 입증하는 사례를 수집하고 살을 붙여 나가기가 쉽겠지요.

프로이드의 언어인 ‘이드’가 넘쳐 흐르는 '상상계'를 투과해야 글의 '구상'이 살아납니다. 구상은 영감과 상상, 경험의 순서로 진행됩니다. 물론 지식이 없거나 직접 경험하지 않은 일도 글로 써야 합니다. 그래서 상징 공부도 구상의 후반작업에서 빼놓을 수 없는 과정이 됩니다.


둘째, 構成(구성)입니다.

‘구상’을 꿈의 단계라고 한다면, ‘구성’은 꿈을 목표로 번역하는 글쓰기 훈련코스입니다. 꿈과 목표는 여러가지 성질이 다른 작업이 뒤따릅니다. ‘꿈’은 통제받지 않는 욕망을 구축합니다. 하지만 ‘목표’는 기간과 방법, 성과의 구체적 기대수치에 이르기까지 매우 전략적인 글쓰기 작업을 함축합니다.

집을 짓기 전에 설계도를 그려야 하듯, ‘구성’은 플롯잡는 일 부텁니다. 서론은 도입부이므로 흔히 문제를 던져야 합니다. 두괄식으로 쓴다면 서론부터 매력, 충격 따위를 던지면서 글을 써야 겠지요.

본론에서는 사회적 글쓰기라면 논거와 입증이 뒤따라야 할 것입니다. 문학적 글쓰기라면 갈등과 반전, 클라이막스, 대단원의 요소로 엮어가야 겠지요. 결론은 침묵이나 반전이 아니라면 글의 주제에 확인도장 찍는 작업으로 마무리지어야 할 텁니다.

서론, 본론, 결론이나 기승전결도 좋고 갈등과 반전, 카타르시스의 고전적 구조도 다 좋습니다. 다만, 구상의 ’구조’는 새 집에 상,하 수도관을 연결하거나 전기 배선을 하듯 글을 정교하게 만들어 가야 한다는 겁니다.

'구성'은 '상징계'로 통합니다. '상징계'가 갖는 에너지는 언어의 정교함에서부터 출발합니다. 글을 두줄꼬기로 쓸 것인지 세줄꼬기로 쓸 것인지 설계도 해야 합니다. 그래야 유기적 논리와 인과관계, 복선이 끝까지 하나의 얼개로 정리될 수 있습니다.

탄탄한 글을 ‘구성’하려면 구조주의 언어학자들의 태도도 참고할 대목이 많습니다. 프랑스 인류학자 레비스트로스나 소쉬르는 문명이나 문화, 문장을 역으로 해석하는 기법으로 구조주의를 채택하기도 했지요. 여러분의 글도 구조를 뒤집어 보시죠. ‘구성’을 지탱하는 뼈대 즉, 글의 골간 구조가 제대로 드러나는지요.


셋째 表現(표현)입니다.

글에서 표현이란 건축으로 비유하면 집을 짓고 익스테리어나 인테리어를 하는 단계라고 봐야겠습니다. 글에 탄력을 더하기 위해 수많은 상징과 은유가 소재로 들어갑니다. 섬세한 표현을 위해 수사법이나 수사학이 동원되기도 합니다. 조그만 토설에 불과하던 단어 조각 하나에 적절한 표현들이 덧입혀지고 유려한 문장, 흔쾌한 문단으로 발전합니다. 그러면 전체 글이 유성처럼 탄력을 받아 밤하늘을 수놓는 것을 볼 수 있습니다.

그림의 표정을 첫선부터 섬세하게 그리기 어렵듯, 글의 표현이 처음부터 자연스러워지긴 쉽지 않습니다. 반복되는 표현의 짝짓기가 필요합니다. 토설하는 글쓰기는 더 절박한 호흡이 필요할 테지요.

표현의 힘을 만들기 위해 '실재계'의 에너지를 찾아 느낌과 생각을 반복해 봅니다. 반복의 힘이 감각과 생각을 강하게 벼려 줍니다. 깊은 생각도 해야겠지만 동시에 군더더기 사유를 간명하게 정리도 해야 할 텁니다. 빅뱅하는 상상의 꼬리를 자릅니다.

다시 '실재'라는 무의식의 꼬리를 화두로 뒤집어 봅니다. 이것이 생각과 직관을 재해석하고 확장하는 힘있는 글쓰기의 훈련입니다. 표현능력을 키우고 생각의 흐름을 잡기 위해서는 의식과 무의식의 맥락을 이어가는 글쓰기 훈련이 필요합니다.(영화에선 몽타쥬기법이 동원되곤 합니다.)

물론 사실을 인식하고 핵심을 잡아내는 후각도 키워야 합니다. 그런 다음 생각과 감각, 사실간에 인과관계를 조화롭게 설명해 내는 종합적 통찰력을 써내는 훈련을 해 보시지요.

이제, 평소 생각과 일상경험의 이야기부터 그물짜듯 이어서 써 나가 보시죠. 일기이건 독후감이건 영평이건 칼럼이건 여러 종류의 글을 정리해 보아야 할 텁니다. 이곳은 서평 글쓰기가 주류이니 책을 본 뒤 포인트와 팩트를 잡아내고 자신의 생각을 버무리는 글쓰기가 필요할 것 같습니다.


어떤 글을 쓰더라도 ‘구상’을 통해 글을 ‘구성’한 뒤, ‘표현‘이라는 3가지 에너지를 통해 글을 여과한다면, 글을 수놓는 기본 힘을 갖추는데 도움이 되리라 믿습니다.

by hannim | 2009/01/30 01:38 | 독서와 글쓰기 | 트랙백 | 덧글(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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